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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00년전경 비옥한 나일강 델타지역의 세계최고의 문화의 발상지라고 불리는 이집트에서는 사람들이 목욕하는 일을 신성한 행위로 여겼으며 흐르는 나일강물에 몸을 담그고 천연탄산소다로 몸을 문지른다음 "홥프"라고 하는 점토를 개서 굳힌 물건으로 몸을 깨끗이 씻은 후 피부에 향유를 발라 피부의 건조를 방지 함으로서 건강과 장수의 비결로 삼았다고 합니다. 여기서 물이 가지고 있는 더러움을 씻어내는 힘을 증강시키는 성질을 가지고 있는 것, 즉 탄산나트륨이 최초의 세정제로 사용되었습니다.

히랍어로 "강과 강 사이에 있는 토지"를 뜻하는 티그리스(Tigris) 유프라테스(Ephrates)강 유역의 슈멜문명 유적지에서 발견된 기원전 25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되는 점토판에는 비누의 제조법과 용도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에 따르면 피부병에 유황비누를 사용하였다던가 비누를 기름 1리터와 탄산칼슘 5.5리터로 제조하였다는 처방이 있다고 합니다. 탄산칼슘은 열대의 콩과 식물인 타마린드, 대추야자, 솔방울, 떡갈나무, 너도밤나무, 등을 태운 재로 만들었는데" 곡물의 풍요함과 더불어 우리들을 청결하게 해주는 이들 나무가 번식되도록" 이라는 시도 새겨져 있었다고 합니다.
구약성서에는 세정을 위해 잿물을 사용하였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약 3000년 전 초기 로마시대에는 사포(Sapo)언덕에서 양을 구어서 신에게 제물로 바치는 풍습이 있었는데 양을 구울 때 생긴 기름이 타고 남은 나무재와 섞여 땅에 스며 들고 빗물에 씻겨내려가 다이빠강의 강가로 흘러 들어갔고 이 강가에서 세탁을 하던 사람들은 세탁물의 때가 잘 닦아지는 사포의 땅에서 놀았다고 합니다. 이 "Soap"가 지금의 "Soap" 의 어원이라는 설도 있지요. 종교와 관계가 깊은 비누는 그래서 "신의 선물"이라고 불리워집니다.

로마 전성시대에도 썩은 오줌, 표백토(漂白土)라는 일종의 찰흙이 세정제로 사용되었습니다. 비누에 관한 최초의 기술(記述)은 1세기의 학자 플리니우스의 명저(名著) 《박물지(博物誌)》인데, 비누는 갈리아 사람에 의하여 발명되고, 짐승의 굳기름과 재로 만든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비누화가 잘 안 되므로, 세정용이라기보다는 일종의 두발용 포마드로 쓰였던것 같습니다. 비누를 세정제로서 용도를 명시하고 있는 최초의 문헌은 2세기의 의사 갈레누스의 《간이약제론(簡易藥劑論)》인데, 여기에는 게르마니아와 갈리아의 비누의 품위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후 4세기에 프리스키아누스가 비누에 의한 세발(洗髮)에 관하여 기술하였는데, 그 당시 비누의 사용은 극히 한정되었던 것으로 생각됩니다. 8세기가 되자 지중해 연안, 특히 이탈리아(베네치아렌瀛립제노바) 및 에스파냐의 비누제조업이 번성하게 되어, 사보나는 비누를 가리키는 라틴계 호칭의 어원이 되었습니다.

9세기 이후, 그 지리적 위치 때문에 집산지로서 번영하였던 마르세유가 12세기경에는 비누 제조기술을 도입하고, 16세기 초에 인도에서 프랑스로 이식된 리넨 공업의 융성에따른 비누의 수요 증대에 의하여 좋은 품질로 유럽의 비누업계를 석권함으로써, 후세에 마르세유비누라는 이름을 남겼습니다.
17세기 마스세유의 올리브유에 해조회를 섞어 만든 비누는 대단히 질이 좋은 것이었습니다.
이 지방에서 생산되는 비누의 평가가 높아지자 값싼 쇠기름 등 동물기름을 원료로 한 질이 낮은 비누가 대량으로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에 화가난 당시의 프랑스국와 루이 14세는 1688년 칙령을 발표하고 비누의 독점제조권을 이 지방에 주면서 동시에 비누제조에 관해 엄격한 통제를 실시하였습니다
루이 14세가 정한 기준에 따르면 비누의 원료는 72%의 올리브유를 비롯해 100%의 식물성 기름만을 사용할 것과 오래 끓여서 만들라는 것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에스파냐 남부프랑스, 갈리아, 게르마니아의 비누가 짐승의 굳기름과 재를 원료로 한 데 대하여 지중해 연안에서 나는 올리브와 해초(海草)의 재를 주원료로 하였습니다.

중세에서 18세기에 이르는 동안 비누 제조기술에는 본질적으로 아무런 중요한 진보가 없었으나, 1790년 N. 르블랑에 의한 식염으로부터의 탄산나트륨(소다) 제조법의 발명과 1811년 슈브뢸에 의한 유지의 화학적 조성의 연구에 의하여 오늘날의 비누 제조의 실제적 기초가 구축되었습니다.

이것에 의하여 원료유지가 차차 다양화되어, 올리브유뿐만 아니라 야자유렛裡(牛脂), 그 밖의 각종 동식물 유지가 이용되었고, 1890년대에는 글리세린의 회수가 일반화되었습니다다.
그 후 제 2차 세계대전후 세제의 원료도 동식물 유지에서 광물유를 원료로 하는 연구가 활발하게 진행되어 1947년 미국 P&G사는 세계 최초로 가정용 합성세제 'Tide'를 시판하기에 이릅니다. 이때부터 합성세제 시장은 눈부시게 발전하여 합성세제 제조회사의 열띤 홍보와 석유회사의 막대한 자본력이 뒷받침되어 합성세제는 급속히 확산되었습니다.

미국에서는 1954년, 일본에서는 1963년, 1989년을 정점으로 합성세제는 천연비누를 능가하는 높은 사용률을 보이게 되었으며 오늘날에는 세제 사용량의 약 80% 이상을 합성세제가 차지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에 최초로 비누가 등장한 것은 19세기 초반으로, 프랑스의 리델이라는 신부가 가져온 '샤봉'이라는 비누였습니다. 그리고 1950년대에 들어와서, 화학적으로 합성한 비누가 생산되기 시작했습니다.